소리도 소문도 없이 새해가 밝았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열고 그 속에 찬 숨을 내뱉는다. 나의 숨은 수많은 이들의 피로 얼룩져 차게 응고된 것. 이로써 하루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린다. 오래된 원두의 꿉꿉한 냄새가 좁은 방안에 가득 찬다. 그저 탄 콩을 우려낸 맛 밖에 안 나는 이 커피 따위를 음미하며 창문을 연다. 새해의...
감정의 격동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세상은 저를 다듬고 깎아서 무지렁이로 만들었습니다. 행복이요? 슬픔? 분노요? 희노애락은 아주 먼 일입니다. 어떤 자극에도 저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죽은 이처럼 암흑같은 흙먼지를 삼킬 뿐입니다. 저도 한 때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한 때는 봄의 상냥과 여름의 상쾌 가을의 우수와 겨울의 눈부심을 섭취하고 음미하며 소화...
일단은 제가 너무 싫어요 그 사람의 진심을 못 받아들이고 외면하며 내 편은 없다고 되뇌이는 제가 한심하고 싫어요 그리고는 그 사람이 미워요 수없이 실망감을 안겨주어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행동하는 그 사람이 정말 미워요 언제든 나를 저 너머로 미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불안하고 또 괴로워요 선생님 선생님 제가 잘못한 게 있을까요 골빈년처럼 믿으면...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영 시원치 않은 날이 있다. 말랑한 뇌 속이 가득 찬 마냥 머리가 무거운 날이 있다. 마땅히 나와야할 눈물들이 속에 스민듯 몸이 무거운 날이 있다. 머리에 차다 못해 뱃속까지 쌓인 것처럼 허기마저 안 지는 날이 있다. 고로 괴로운 사념들은 일용할 양식이다. 나는 그로 인해 식비를 아낀다. 가성비 좋은 삶이다. 내가 죽어도 내 육신은...
아가리를 척 벌린 우울 앞에서 무력한 나는 자아도취에 빠진다 행위는 성적이다 자극적이고 음탕하다 가학자는 눈을 까뒤집고 상상한다 우울의 목전에서 흥분감은 고양된다 네 다리를 벌려 그 사이를 난도질해도 괜찮을까 ? 무릎의 연한 관절을 송곳으로 짓이겨도 괜찮을까 ? 살이 많은 부위를 도려내 네 아가리에 쑤셔넣어도 괜찮아 ? 배꼽에 맞춰 칼을 욱여넣고 그 속을 ...
우선 씻고 올게요
호흡이 벅차고 마음이 아릿할 정도로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만 죽고싶어진다. 아무리 좋아도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싫달까, 샘솟는 그 감정을 해소할 방도가 없어 손 놓고 듣고만 있어야하는 것이 서글프달까, 어쩌면 좋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한 곳에는 무력감이 키운 죽음본능이 대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을 별안간 꺼내면 선명...
결국 또 내 탓이다. 내가 슬픔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 탓이 아니다. 결국 나를 둘러싼 내 관념을 떨쳐내지 못하는 내 탓이다. 하여간 뭐든간에 내 탓이다. 다 내 탓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다 내 탓이다. 내 관념 탓이다. 나는 한심하다. 고작 내 생각 따위도 어떻게 못 멈추는 내가 병신이다. 저 말이 다 맞다 다 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너무 힘들면 내...
제곧내
죽고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머리가 아프다 심장을 쥐어 뜯기는 기분이다 아무도 안 그랬는데 나 혼자 그렇다 야 그래두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 행복할 수 있어 힘 내자 ! 있겠냐 나 존나 병신이란 말야... 아 진짜 나 힘들어 그만해... 나 진짜 병신이야 아무것도 못 해 할 줄 몰라 진짜 개좆밥이야 진짜 진짜로
텅 빈 속을 쥐어짜며 기침처럼 역겨운 기분을 토해내는 새벽을 아시나요? 저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더 괴로워해야 남김없이 토해낼 수 있을까요 잔존하는 기억의 파편들이 체액에는 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녹여주나요?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해도 역겨운 이물감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벽에 머리를 쾅쾅 찧으면서까지 뭉친 생각을 흩뜨리려 노력했어요 찬물을 지겹도록 마...
그냥 친구랑 다같이 술 마시다가 잠깐 같이 바람 쐬러 나간 거야. 말했잖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약속 있다고. 근데 친구가 근처에 자기 친구 있다고 다같이 놀자고 걔를 부른 거야. 나 애인 있다고 그런 거 싫고 우리끼리 놀자고 딱 잘라 말하는 것도 웃기잖아. 그래서 걔 왔길래 다같이 얘기하면서 논 것 밖에 없어. 둘이서 나가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나...
2000年 2月 22日 교양_있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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